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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소중한 일상

작은 유럽 마을을 느끼기에 그라나다는 충분했지

by 해 니 2023. 12. 30.
2023년 회사에서 입사3주년 기념으로 얻은 리프레시 휴가를 다녀와서 글로 남깁니다. 15박17일을 스페인 그라나다 > 세비야 > 포르투갈 포르투 > 리스본을 여행했어요.


코로나 기간동안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야 말았다. 유럽여행을 갈 때 직항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말이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두바이를 거쳐 마드리드 그리고 목적지인 그라나다까지 22시간의 비행시간을 마치고 그라나다 공항에 도착했다. 오랫만에 떠나는 여행인지 비행시간이 지겹지 않았다. 화려한 두바이 공항도 구경하고, 적당한 경유시간으로 다가올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렘이 전부였다. 비행기가 연착될까봐 마드리드에서 그라나다로 넘어가는 비행기 시간을 7시간 차이로 예약해두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칼같이 도착시간을 맞춰주었다. 이베리아 항공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까 고민하던차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베리아항공 카운터가 보였다. 저녁7시비행기를 1시간정도 남은 3시 비행기로 예약을 변경했다. 시간이 빠듯하여 급하게 달려가서 그라나다 비행기를 기다린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이베리아항공은 어떠한 공지도 없이 30분째 출발하지 않았다. 알음알음 짧은 영어로 비행기를 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출구 게이트가 바뀌었다. 출발시간으로부터 1시간정도 흘렀을까, 드디어 비행기를 탑승하게 됐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종이컵에 물 한 잔 나누어 주더니 다시 1시간 넘게 기다렸다. 한국이었으면 더 큰 항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유럽사람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가벼운 불만을 몇마디 꺼내고 말았다. 이렇게 시간을 안지키는 나라가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지 참 신기하다. 이제는 아무일 없이 도착하기만을 바랄뿐이다.

골목에서 바라보는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그라나다 공항에 내리니 오후 5시쯤, 블로그에서 보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시간을 물어보니 출발할 때 되면 알려주겠다는 기사님의 말에서 다시 여유를 찾아본다. 여행을 와있는것이 실감되었다. 매일 30분 단위로 진행되는 미팅, 정각을 맞춰서 대기해야 하는 일들에 치이는 일상들을 보내고 있는데... 언제 출발할지도 모르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니 드디어 여행이 시작된 것 같다. 그라나다 숙소는 걱정과 달리 문을 여는 것도 어려움이 없었고, 엘리베이터가 있어 짐을 옮기기도 편리했다. 아늑한 숙소가 주는 분위기 덕분에 출발이 기분 좋았다. 이대로 잠들기에 아쉽기도 하였고,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을 8시쯤 먹기 시작한다고 해서 우리도 부랴부랴 동네로 나가본다. 5분정도 걸어서 큰길로 나가니 유명한 맛집이 있었고, 금방 자리가 나서 노천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맛보았다. 밖에서 식사를 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그라나다 모닝커피


시차 적응 때문에 새벽에 일어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동네를 거닐어보고 싶어 우산을 들고 무작정 나갔다. 어두운 길가에 술집인지 카페인지 알 수 없는 가게가 불을 비추고 있다. 길건너 큼지막한 카페도 있었고, 스타벅스도 있었는데 왠지 동네 카페를 가고 싶어 우산을 접고 들어갔다. Tostada 라고 불리는 구운 빵 위에 토마토 소스를 바른 바게트와 커피 세트가 있어서 몸을 녹였다. 우연히 만난 카페, 동네 사랑방 같아서 우리는 소곤소곤 아침 커피를 마셨다. 밖에는 오늘 큰 행사가 있는지 길거리에 의자와 몇가지 기구들을 설치하고 있었다. 성당에서 준비하는 행사같았다. 숙소로 들어와 잠깐 잠이 들었고, 오후에 동네 구경을 나가본다. 오늘은 그라나다 안에 모코로라고 불리는 시장 골목을 거닐기로 한다. 아침에 만났던 분주한 거리는 사람들이 거리에 의자에 앉아있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치이다. 5시쯤 행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우리는 일정을 마무리하고 구경하기로 했다. 알함브라궁전을 바라보며 외곽을 거닐어보기로 한다. 알함브라궁전이 가장 잘 보인다는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맥주한캔씩 마셨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금새 그치는 것을 보니 이곳의 원래 날씨인가보다. 카페에 앉아 알함브라궁전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마셨다. 커피를 마셨다가, 맥주를 마셨다가, 뜻대로 흘러가는 일상이 여행다워서 더욱 좋았다. 
다시 마을로 내려와서 행사의 정체를 알게된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천주교의 큰 행사이고 그라나다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구경하는 것 같았다. 미리 알아둔 맛집으로 가서 이베리코 돼지고리를 맛보는데 꼭 소고기같이 부드럽다. 함께 먹은 토마토 샐러드도 달짝지근하고 맛있었다. 저녁을 거닐면서 행사 구경도 하고, 길거리 사람도 구경하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알함브라궁전을 가는날 아침, 햇살이 얼마나 따사롭고 예쁜지 발걸음이 가볍다. 이날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러 다녀왔다. 우리만의 루틴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알함브라궁전은 투어를 예약할까 고민하다가 우리끼리 구경하기로 했다. 숙소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갔는데, 아이들이 앉을 자리가 필요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버스에서는 'englishman in new york'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평소에 정말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아이들이 떠드는 버스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알함브라궁전은 어제 카페에서 바라본 외관과는 다르게 아기자기하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서 그라나다를 방문하는 것이 이해가 될만큼 멋진 곳이었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공주님이 튀어나올 것 같이 예쁜 성이었다. 따사로운 날씨에 예쁜 궁전을 구경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1~2시간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노을이 지는 풍경은 유튜브 플리 썸네일로 보던 분위기다. 곳곳이 돌아볼 때마다 멋진 그라나다. 그라나다 대성당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그라나다에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가게가 많이 보였다. 특히 술을 함께 곁들이는 자리에서도 아이들이 함께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남편과 나는 육아를 하면서도 자신들의 저녁 시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문득, 이번 여행이 우리 둘만의 가족 워크샵인 것 같았다.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니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 삶의 방향에 대해 오랜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저녁을 먹고 그라나다에서 유명한 재즈바를 찾았다. LP판이 전시되어 있었고, 우리는 라이브로 재즈 피아노 연주곡을 들을 수 있었다. 재즈를 좋아하는 남편의 표정이 행복해보인다.

알함브라궁전


 마지막 날은 그라나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타파스를 먹기로한다. 그라나다는 술을 한잔 시키면 함께 먹을 안주를 내어주는데, 그 안주가 꽤 식사가 되어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인기가 많은 식당에 줄을 서는데, 대학교 근처여서 그런지 학생들도 많다. 술을 연달아 마시다보니 알딸딸한데, 내어주는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1인당 4잔정도 마셨던 것 같다. 그라나다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을 걸어보고 싶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한참을 걸었다. 그라나다 대학교가 나왔는데, 어쩜 대학교마저 너무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대학교 강의를 구경하니 멍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졸고 있는 학생, 수업을 듣는 학생, 교수님, 벽에 붙은 동아리 공지문까지 모든게 그립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작은 유럽마을 그라나다를 떠난다. 이제 세비야로 출발

그라나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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