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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같은 찬란한 순간(에세이)

엄마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타났다

by 해 니 2023. 1. 23.

 이번 설 연휴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엄마집에는 할아버지가 오시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했다. 설 전에 사놓은 몇가지 밀키트로 보낼참이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집에 오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서운했는지 전날 통화에서는 밥만 따로 먹고 집으로 오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갑자기 바뀌는 계획에 조금 짜증이났다.(확신의 J...) '엄마는 안 가기로 했는데 왜 또 오라고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 가겠노라고 단호하게 내뱉었다. 엄마는 설 당일 저녁에 음식을 가져다 주겠다고, 먹을게 없어 걱정이다며 서른 살 넘은 다 큰 딸을 계속 걱정했다. 차가 막힐텐데 괜히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의 음식이 특별히 맛있다는 것을 스무살 쯤 알게되었다. 말이 없던 사촌 동생이 엄마가 한 된장찌개를 맛보고 '너무 맛있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했다. 다른 사촌동생도 된장찌개가 참 맛있다고 했고, 부산에 사는 작은할아버지도 우리집에 오시면 된장찌개를 찾으셨다. 그맘때쯤 알게되었다. 당연히 먹었던 엄마 음식이 다른 사람의 입에도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이 장모님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엄마는 리액션이 좋은 사위 너스레에 신이 나서 음식을 더 많이 만들고 있다. 코로나가 걸렸을 때에도 음식을 싸들고 와서 집 앞에 두고 가기를 여러차례였다. 엄마는 내가 국을 끓이는 것, 반찬을 하는 것에 대해 묻는 것을 참 즐겨한다. 사소한 방법까지 엄마만의 비기처럼 알려준다. 주의해야할 것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엄마가 달려왔다. 한 눈에 보아도 뭔가 가득 들은 것 같다. 샐러드,  꽃게탕, 꽃게탕에 넣고 끓일 씻은 미나리, 샐러드 소스, 묵, 내가 좋아하는 엄마 잡채, 사위가 좋아하는 시금치 나물 무침, LA갈비, 단감 3줄... 이것은 반찬 몇개가 아니라 밥상을 통째로 나른 것이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그동안 엄마의 반찬을 받으면서 피곤한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지만 눈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동시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불편하신 허리로 가방에 반찬을 가득 넣어서 버스에서 내리셨다. 내가 가장 애틋해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엄마가 겹치면서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경상도 여자인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몇 번 없다. 같은 경상도 사람 할머니에게도. 

그녀들에게 사랑은 음식이었다. 내게 무수하게 건넨 반찬과 요리들이 그녀들만의 사랑의 표현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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