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소중한 일상

지리산둘레길에 초창기 유퀴즈 감성이 있다.

해 니 2024. 4. 21. 18:40

여행 시작

봄을 만끽하고 싶어 여행지를 찾다가 '하동'을 다녀온 후기가 좋아서 하동으로 선택했다. 5시간 남짓 운전해서 가야하는데 간 김에 어떤 곳을 둘러볼까 하다가 돈도 적게 들고 만족감은 높은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며 꽃놀이를 즐겨보려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2년 전 남편과 다녀왔을 때 너무 행복했던터라 주저 없이 선택했다. 여행은 3박4일, 하동/구례 > 지리산노고단 > 지리산둘레길 21코스 로 이어진다.

 

 

하동,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새벽 6시쯤 인천에서 출발해서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고 하동에 도착해보니 11시30분쯤이었다. 다행히 둘이 운전을 나눠서하니 덜 지쳤다. 하동 십리 벚꽃길을 지나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벚꽃터널이 만들어졌다. 차도 사람도 없고, 딱 지난주에 만개했을 것 같은 벚꽃잎이 하늘을 가로 지른다. 혹시나 늦었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흩날리는 벚꽃이어서 더 아름다웠다. 도착하자마자 고른 식당은 더덕구이정식을 내어주는 백반집이었는데, 사장님이 네이버에 써놓으신 '관광지라서 별볼일 없을거다라는 말을 절대 듣기 싫다' 라는 메시지에 이끌렸다. 주차 후 자리를 잡자마자 식당이 차기 시작한다. 더덕구이가 나왔던 돌판에 나물과 함께 밥을 비벼 먹는데, 이걸 먹으러 여기까지 왔구나 했다. 막걸리를 한 잔 곁들이고 싶었는데 여행 초반이라 꾹 참아본다.

 

 천천히 걸어 쌍계사를 구경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봤던 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언덕이 많아서 그럴수도 있겠고, 점심이 맛있어서, 아니 남편과 함께여서 더 아름다웠을지도. 108계단을 세어보며 올라오는 남편이 너무 귀여웠다. 쌍계사는 수행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많이 보였는데, 상업화된 절 느낌이 아니라, 정말 부처를 믿고 덕을 쌓고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하동 십리 벚꽃길에서 카페를 찾다가 서울에서도 볼법한 대형카페는 피했다. 손님1명만 겨우 있는 카페에 들어가 벚꽃길이 바로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멍해졌다. 이렇게 멍하니 벚꽃을 바라보고 있었던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과 문득 남편과 긴 시간 휴가를 내고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구례, 북문토종삼겹살

 

  

 숙소에 도착해서 1시간 정도 눈을 감고 쉬다가 구례에 유명한 빵집이 있다고 하여 구경갔다. 빵은 내가 좋아하는 곡물빵이었고, 식감이 좋았다. 숙소에서 추천해준 삼겹살 집에 방문했는데 들어가서 인사를 하니 식사를 하고 계시던 아저씨가 인사를 받아주셨다. 이내 식당 사장님 할머니가 맞이해주신다. 인사를 받아줬던 아저씨와 사장님할머니 대화가 즐거웠는데, 아저씨는 삼겹살집 맛을 칭찬하며 할머니에게 식당을 프랜차이즈화하거나 확장할 것을 권유하셨다. 그 이야기 속에 할머니가 딸이 넷이고 구례에 남은 딸 하나는 군청에서 일하고 있다는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들을 수 있어 더 정겨웠다. 물론 아저씨네 두 딸 이야기도. 삼겹살이 어찌나 신선하고 맛있는지, 반찬은 또 하나 하나가 별미여서 신나게 먹고 있었는데 아차 오늘이 4/10 총선이었다는 것도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다. 오후 6시가 넘어 개표방송이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손님 덕분에 알게되었다. 가게로 들어온 선거아저씨(라고 칭하겠다^^)는 흥분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투표를 했느냐며, 우리가 OO 을 이겼노라며 아저씨 입장과 구례라는 지역 입장에서(^^) 기분좋은 뉴스들을 전하셨다. 워낙 시골이고 지역 특색이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 우리는 그 장면마저 흥미로워졌다. 할머니는 우리를 가리키며 서울사람들이 있어 말을 조심해야한다고 하시기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안심시켜드렸다. 선거아저씨는 아주 매너있게 우리에게 TV를 좀 켜고 봐도 되겠냐고 하셨고, 우리도 흔쾌히 좋다고 답했다. 이것은 마치 좀 오바해서 월드컵 우승국가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오늘 술이 잘 팔리겠다며 좋아하셨다.

정말 맛있고 정겨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라고 하니 할머니는 주춤하시며 그래 우리가 살아생전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서로 건강하자며 인사를 마무리하셨다.

 

지리산 노고단, 온천

 노고다는 10여 년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며 올랐던 곳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는 노고단에서 일출을 보았다. 지리산둘레기를 두번째 오고 있는 남편이 지리산 정상은 못가본 것 같아 이번 코스에 지리산노고단을 넣어봤다. 성삼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2시간 남짓 올라가는 지리산 규모에 비해 짧은 코스였다. 아쉽게도 4월 여행이다보니 지리산 정상부근은 아직 겨울이었다. 풍경은 좀처럼 멋지기 어려웠지만 쉬엄쉬엄 올라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일정을 넉넉히 잡아둔 덕에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다녔다. 지리산 구례 산수유 마을에 온천이 유명하다고 해서 호텔에 있는 온천을 갔다. 온천 물이어서 그런지 정말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어제부터 긴 시간 운전에, 노고단까지 다녀온 후 온천을 가니 몸이 아주 나른했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여러가지 메뉴를 하는 식당으로 가서 제육볶음을 먹었다. 사장님 혼자 요리도 하고 서빙도 하시는 곳이라 여기도 들어갔을 때 사장님을 뵐 수 가 없었는데, 역시나 앉아있던 손님이 '형수~, 손님왔어요' 하고 사장님을 불러주신다. 동네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맛집일 것 같아 평소 좋아하지 않는 제육볶음을 시켜보았다. 역시나 반찬도 고기도 모두 맛있었다. 먹고 싶었던 산수유 막걸리를 먹고 숙소에 와서 '눈물의여왕' 한편 보고 잠들었다.

 

지리산둘레길 21코스, 남원호텔(=남원반달곰호텔)

 

 지리산둘레길 중 어떤 코스를 가야할지 고민했는데, 21코스가 그나마 숙소와 음식점이 있어서 선택했다. 아무래도 둘레길2,3코스는 유명한 민박도 있고 길 중간에 음식점, 카페도 있지만 그 외 코스는 정말 깡촌인 것 같았다. 지리산둘레길21코스도 농사도 짓지 않는 사람 없는 길이 많았다. 산수유가 유명하다고 하여 보는 나무마다 산수유인지 의심했으나 결국 노오란 산수유는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괜시리 21코스를 잡은 것은 아닐지 지리산둘레길 선배로서(ㅋㅋ) 남편에게 미안했는데, 그마저도 늘 좋다고 해주는 든든한 남편 덕분에 즐거웠다. 꽤를 부리지 않았는데 마지막즈음에는 4시가 다되었는데 1시간이 남아서 막판 속도를 높였다. 해가 질까봐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그리고 무섭던지 동요를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산을 빠져나왔다.

 

 구례에서 남원까지 걸어서 남원호텔에 도착했다. (*네이버에서 검색 시 남원반달곰호텔 로 검색) 

호텔은 예상대로 낡았다. 호텔사장님이 넘겨준 키도 정~말 20년 전에 여인숙을 가면 주는 플라스틱 키였다. 방문을 여는 순간 객실도 낡은게 느껴졌디만 어딘가 모르게 정갈하고 깔끔했다. 바닥에 먼지도 없었고 침구도 깨끗했다. 지리산둘레길은 좋은 숙소를 기대하기보단 항상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민박에 머물다보니 이정도 호텔이라면 정말 '호텔'이름에 걸맞았다. 저녁을 먹으려 나오는데 사장님이 뒤따라서 나오시며 저녁 먹을만한 식당을 추천해주신다. 다정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다음날 차를 주차해놓은 산동면으로 돌아가야했는데, 택시도 저렴한 금액으로 소개해주셔서 덕분에 편하게 움직였다. 또 나오는 길에 삶은 계란과 종이에 고이 접은 소금을 쥐어주셨다. 호텔사장님의 친절함이 느껴져서 행복한 여행 마무리였다.

 

여행 마무리

 벌써 지리산을 4번째 여행이라니, 내가 꽤나 좋아하는 여행지이구나 생각했다. 겉으로는 '돈이 안들어 좋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사실은 시골길을 꼬불꼬불 걷는 것도 좋아했고, 시골에서 할머니,아저씨들을 만나며 그분들 사는 이야기 귀동냥하며 듣는것도 엄청 좋아하나보다. 남편과 이야기 나누면서 예전에 초창기 동네를 돌아다니던 유퀴즈를 좋아했던 나를 보면 딱 맞는 감성이라고 했다. 특히 지난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장소도 중요하지만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많이 깨닳았다. 지리산둘레길을 가면 구름보며, 꽃보며 남편과 이야기를 하루종일 할 수 있어 너무 재밌다. 다음에는 제주도 둘레길도 고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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