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레시 휴가 2주를 보내고 왔습니다.
10월 사랑하는 유럽으로
회사에서 입사 3주년 기념으로 2주 동안 리프레시 휴가를 받았다. 이미 올해 초부터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열심히 궁리한 덕분에 남편과 5월쯤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일하는 내내 방학을 갖고 싶어했는데, 2주는 가을방학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다가 여행을 많이 다녀본 지인이 추천해준 '포르투갈'을 가기로 했다. 지난번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다시 오리라 다짐했던 스페인 소도시도 함께 구경하기로 했다. 일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리프레시 휴가를 떠올리며 버티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10년차에게 2주 휴식 (ver.일)
직장생활을 한 지 어느덧 10년차가 되었다. 2번의 이직이 있었지만, 첫 이직은 유럽여행을 예매해놓고 발목 인대가 늘어나서 취소했고 두번째 이직은 코로나 시기여서 집콕하다가 출근했다. 짧은 휴가들이 있었지만 2주를 푹 쉬고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마치 10년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늦은 밤에도 언제든지 메신저 알림을 확인해야 한다. 휴가 기간 동안 인수인계와 일처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팀에는 이미 백엔드개발, 프론트개발을 이끌어주시는 든든한 개발리더분들이 있었고 PM 1명도 함께했다. 한 팀으로 보낸 시간이 최소 6개월 정도 되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우선 PM이 내 빈 자리를 채워야 할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해야하는 일감을 최대한 빼두었다. 빈 자리를 만들어 놓아야 담당자 분이 덜 지칠 것 같았다. 큰 배포도 진행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부재하는 기간 동안 사용성이 많이 달라진 큰 배포도 있었고, 아이폰 15 출시로 인해 핫픽스로 대응해야하는 기능도 있었다. 장애도 1건 발생해서 팀원들이 무척이나 바빴었다. 다들 휴가를 끝내고 복귀한 나를 반겨주는 것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혼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아 겸연쩍었다.
일상 OFF
휴가를 떠나며 한가지 굳게 다짐한 것이 있었는데, '알림 OFF' 였다. 회사 메신저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자주 쓰는 앱 알림, 이메일 알림까지 모두 OFF했다. 나에게 어떻게 주어진 소중한 휴가인데,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잘 쉬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또 내가 휴가를 떠나서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고 대응을 한다고 해도, 여행지와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한발 늦은 참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주의 휴가 기간은 잠깐 돕는 것이 오히려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다. 내가 잘 쉬고 회복해서 돌아오는 것이 회사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모두 OFF 했다.
물론, 아이폰 15 출시에 고생하는 팀원들이 걱정되서 두바이 공항에서 테스트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세비아에서 반나절 휴식시간이 생겨서 메신저를 훑어보기도 했지만 최소한 이모지나 답장, 승인처리를 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 휴가 후 팀원들이 '좋은 본보기였다' 라는 반응을 주신 것을 보니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인지 휴가를 다녀온 후 '얼굴이 좋아보인다'는 동료들의 인사가 있었고, 나도 오히려 에너지가 생긴 느낌이었다. 머랄까... 노트북 전원을 완전히 껐다가 다시 켠 느낌인 것 같다. 언제 내게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기려나.
15박17일 여행(ver.개인)
여행을 이렇게 길게 떠나는 것도 처음인데, 남편과 오롯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더 신이 났다. 주말에만 겨우 할 수 있는 것들을 매일 매일 해볼 수 있다니 우리에게 이 시간이 주어진 것이 정말 감사했다. 과거에 투어를 예약하고, 분 단위로 쪼개어 다니던 여행 스타일을 버리고 이번엔 넉넉하게 여유롭게 다녔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하고, 햇살을 보고 노을을 즐기며 저녁엔 맛있는 술과 이야기가 함께했다. 남편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을 하여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더 늦지 않은 지금, 젊은 날의 우리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어 또 감사했다.
리프레시 그리고 유럽 한 풀이 성공
대학교 때 유럽 배낭 여행을 못 가본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았다. 그때는 돈이 없었는데, 회사를 다니니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억울했나보다. 이번에 2주간 길게 유럽을 다녀오니, 유럽 한 풀이를 끝낸 것 같다. 이제는 다음 여행지가 꼭 유럽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편한 마음이다. 리프레시를 하고 오니 일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변화가 있었다. '해보지 머' 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정말 좋은 휴가였다고 생각한다. '또 보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