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매니저 Study

본부장님께 전수받은 기획자 일 잘하는 법 5가지(feat.퇴사)

해 니 2020. 2. 3. 13:46

일 잘하는 보스를 모신다는 것

  서비스기획자가 되고 싶어서 지금 회사로 이직한지 만 3년 6개월이 지났다. 그 중 3년을 모신 본부장님이 퇴사를 하셨다. 내게는 회사가 본부장님이고 본부장님이 곧 회사였다. '본부장님이 근무하실 때까지는 회사를 다닐 것 같아' 라고 말할 정도로 본부장님은 나의 최고의 보스이자 멋진 파트너였다. 본부장님으 퇴사 소식을 듣고 여러모로 마음 정리를 하던 중 내가 본부장님 옆에서 배운 내용들을 남겨두려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하겠지만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상사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상하관계인 보스를 일을 잘한다고 평가해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는 구성원이, 구성원은 상사가 맘에 들 수 없는 구조가 아닌가. 다행히 운이 좋게도 '인생 본부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H본부장님이라고 해두겠다. 그는 글로벌 게임회사와 삼성을 거쳐 교육회사 IT본부장으로 입사했다. 보수적인 교육회사에서 IT본부장으로 일궈낸 업적을 하나하나 정리해보려한다. H본부장님은 리더로써 인성, 업무적 스킬,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이 뛰어났다. 앞으로 서비스기획자로써 회사생활을 하는데에 지침서가 될 것이다.

 

 

기획자(회사에서) 일 잘하는 법 5가지

 

01. 친절하고 상냥하라

  본부장님은 회사에서 한번도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 구성원 누구에게든 예를 갖추었고 친절했다. 먼저 인사를 건내는 것은 물론 사소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해주셨다. 당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지시하기보단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다.

 한번은 프로젝트 WBS를 보고드린 적이 있었다. 3개 솔루션으로 나뉘어져있는 서비스를 1개로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오픈까지 6개월의 작업시간이 소요되었다. WBS에 대해 잠깐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본부장님 말씀에 잔뜩 긴장하고 본부장님 실로 들어갔다. 보나마나 혼이 날 줄 알았다. 본부장님은 '작업 기간을 짧게 가지고 오픈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과 함께 '기획자가 개발자와 소통하는 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WBS는 기능정의서를 기반으로 작성하고, 어느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지 확인 후 해당 기능은 추후오픈으로 미루거나 스펙을 낮추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능력이 부족한 구성원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보단 어떻게하면 일을 잘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본인의 시간을 쓰면서 교육해주신 것은 잊지못할 가르침이 되었다.

 

02. YES 맨이 되어라

   이 주제에 대해서는 반대의 의견이 많을 수도 있겠다. 회사에서 YES맨은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본부장님은 아주 YES 맨이셨다. 그런 그의 자세에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는데, "아무도 안(못)한다고 하면 내가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사가 YES 맨일 때 부하직원이 힘든 건 사실이다.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와버리니 당연히 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장점도 분명히 있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서 본부, 본부원 평가를 높일 수 있다. 특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IT본부의 이미지는 엉망이었다. '칼퇴근하면서 일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비협조적이다'는 평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IT본부 이미지를 바꾼 것은 본부장님이 YES 맨을 자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IT본부 이미지는 '뭔가 빨라, 앞서가있어, 그래도 IT본부라면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서 해주지 않을까?' 로 바뀌었다. 또 그들이 우리에게 급히 요청한 것을 YES 해주니 그들은 늘 갚을 빚이 있게 된 샘이다. 항상 YES인 IT본부가 NO 라고 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주는 장점도 있다. 

 

 

03. 커뮤니케이션은 스며들듯 하라

 

  본부장님은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갖고 있었다. JIRA, 컨플루언스 도입으로 사내 업무 문화를 개선하였는데 이 사례는 가장 성공적인 업적이다. 우리회사는 커뮤니케이션 툴로 메신저를 쓰고있었다. 히스토리가 남지 않아서 몇개월 전 커뮤니케이션 내역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메신저를 다른 툴로 바꾸기에 쉽지 않았다. 연령층 높은 부서도 있었고, 새로운 툴을 도입하려면 적응하는데, 아니 쓰게 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기 때문이다. 본부장님은 IT본부 안에서 사용을 시작했다. 본부원으로 검증 시간을 거친 후 전사에 적용하려던 것이다. 본부원이 사용한지 1년, 우리는 상부에 JIRA, 컨플루언스를 사용했을 때의 장점을 소개했다. 솔루션 도입을 강제하지 않고 '이렇게 좋은데도 안쓸래?' 전략을 택한 것이다. 컨플루언스는 (당연히 너무 편하니까!) 전사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JIRA는 필요한 부서에 따라 순차적용 중이다.

 일상에서, 특히 회사에서 문화를 바꾸기란 참 쉽지 않은데 전사 커뮤니케이션 툴을 변경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또 50%정도 성공한 결정적인 이유는 본부장님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04. 신뢰하라 그러면 신뢰받을 것이다

   

    기획안을 보고하면 컨펌을 기다리기까지 여유가 없다. 컨펌 때문에 작업 요청이 늦어져서 오픈일에 맞추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상부의 피드백은 99% 반영하게 되어있다. 왠만한 자신감 아니고서야, 피드백을 스킵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사건건(작은 텍스트 한줄까지도) 피드백을 받다보면 때론 내 기획안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발생한다. 여러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다보니 최초의 기획안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악순환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컨펌으로 시간을 소요하고, 기획안이 너무 많이 수정되면 기획자는 자기도 모르게 완성도를 낮추게 된다. '어차피 피드백 받으면 고쳐야겠지, 내가 해봐야 수정될걸 뭐' 라는 생각이 지배해버리기 때문이다. 

  본부장님은 달랐다. 기획자와 작업자들의 의도를 존중했다. 취지가 분명하고 의도가 있다면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여러가지 선순환을 만들게 되는데, 첫번째는 기획자 스스로 자신의 업무에 책임감이 강해진다. 본부장님이 믿어주시는만큼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장님의 피드백으로 기획안이 소위 '엎어지지' 않으니 업무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업무 요청 먼저 해놓고 담당다를 지정받아 놓는다) 

 본래 기획자의 의도를 존중해주시니 가끔 설득이 안되는 피드백을 주시더라도 '본부장님의 의도가 있으신가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번은 정말 별로인 문구로 피드백을 주시길래, 다른 내용으로 제안드린 적이 있었다. 이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본부장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본부장님이 나를 믿어주시는 만큼, 나도 본부장님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후배의 기획안이, 팀원의 보고서가 마음이 안드는 것 투성일 수 있다. 세세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 당장은 내 맘에 드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결국 그 사람을 훈련시킬 수 없어서 영원히 A TO Z 로 지적해야할 수도 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서로의 신뢰관계를 형성한다면 멋진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05. 지적 리더십을 갖춰라

   유시민이 한 방송에서 대통령의 조건 중 '지적 리더십'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리더라면 지적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보고를 하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한번 들은 보고를 되묻지 않을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윗사람 아래서야 제대로 일을 한다."

 

 방송을 보면서 본부장님 생각이 떠올랐다. 본부장님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항상 다 알고 계셨다. 프로젝트 진행현황이 어떤지, 어떤 일들이 예정되어있는지 등. 물론 본부장님이어서 당연히 알아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팀장님도 안계셔서 직접 보고를 받기 어려웠고,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는 시급한 사안이 아니어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정리해주셨고, 1년 전 함께 계획했던 내용들까지 모두 기억하고 계셨다. 본부장님께서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니 나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본부장님 알고 계신다는 것, 방향을 잡고 계신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되는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나도 끝까지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지적리더십이란 유시민이 말한 그대로 참 중요한 것 같다. 보고한 내용에 대해 바보같은 소리를 하거나, 되묻는게 반복되면 보고자는 보고 당사자를 신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본부장님을 계속해서 믿고 따를 수 있게 된 것도 본부장님의 지적리더십이 아니었을까.

 

 

이별은 언제나 아쉽지만

 

  회사에서 함께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아쉽다. 종종 보면된다고 서로를 위로해보지만 사무실 안에서 업무로 동거동락하는 재미가 없어지는건 정말 슬픈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업무 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그를 본부장님으로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다. 회사에서 다시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앞날을 응원하고 또 1년에 한번 술잔을 마주하며 넘쳐나는 본부장님의 아이디어를 계속 들을 것이다.

See 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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